북극 탐험의 역사



북극 탐험의 역사

북극지역의 주변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활동이 이루어져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스피츠베르겐 등은 9∼12세기경에 발견되었다.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점은 유럽에서 동양의 부(富)를 찾아 북동 또는 북서항로에 대한 탐험을 끊임없이 계속한 일이다. 15세기 무렵부터 유럽 여러 나라는 북극항로를 개발, 바렌츠 ·배핀 ·허드슨 ·프랭클린 등 현재의 지명에도 그 이름을 남겼다.

북동항로는 스웨덴의 노르덴시욀드의 베가호(號)에 의해 1878∼79년에 정복되었고, 다시 베링해협을 거쳐서 일본의 요코하마[橫濱]에 입항하였다. 1932년에는 러시아의 쇄빙선(碎氷船) 시빌랴코프호가 한여름에 서쪽에서 동쪽에 이르는 항해에 성공하였다. 한편, 북서항로는 줄기찬 도전 끝에 1903∼06년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이외아호로 항해에 성공하였다. 이들 항로개발과 함께 대두된 것은 극점도달을 위한 시도였다. 그 중에서도 1893~96년 난센 등에 의한 프람호의 표류(漂流)는 과학상의 성과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09년 4월 6일 미국인 피어리는 그린란드 북부에서 개썰매로 북극점에 도달하였다. 이보다 앞서 1908년 4월 21일 미국인 쿡은 극점에 이미 도달하였다고 발표하여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일어났으나, 오늘날에는 대다수가 피어리의 극점 도달을 믿는다.

공중에서 처음으로 극점에 도달한 것은 미국인 버드로서, 그는 1926년 5월 9일 스피츠베르겐에서 왕복비행에 성공하였다. 또한 2일 후에 아문센과 이탈리아의 노빌레 등은 똑같이 스피츠베르겐에서 비행선으로 알래스카까지의 북극횡단에 성공하였다.

1882~83년에 설정된 제1회 극년(極年)의 국제공동관측을 위해서 유럽 각국과 미국 등 11개국은 북극 주변에 기지를 설치하였다. 50년 후인 1932∼33년의 제2회 극년에는 규모가 더욱 커졌고, 1957∼58년의 국제 지구관측년에는 북극해의 해빙이나 빙도 위에 미국 ·소련의 4개 관측소가 설치되었다. 북극해 해빙상에서의 관측은 1937년 소련이 극점 부근에 설치한 ‘북극 1호 표류관측소’가 처음으로, 항공기에 의해서 설치되었다. 1950년 북극 2호, 1954년 3 ·4호가 설치되었다. 러시아 연방은 항상 2곳의 관측소를 보유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알래스카에서 북극점까지의 기상관측 항공기를 띄웠고, 1952년에는 빙도 T-3(미국 공군이 발견하여 ‘Target’의 T를 따서 명명)에 관측소를 설치하였다.

그 밖에도 미국은 그린란드에서 설빙(雪氷)과 동토의 연구를 하고 있으며, 1958년에는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호와 스케이트호가 얼음 밑으로 북극점에 도달하였다. 캐나다도 1950년 무렵부터 조사 ·개발에 주력하여 미국 ·캐나다 공동기상관측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도 관측소를 상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