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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소수자를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에 뿌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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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각 개인들의 자유와 존엄성을 전제로 성립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국가의 주권이 개인들의 총체인 국민에게 주어진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은 서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며 관용한다는 뜻이 된다. 또한 소수의 자유도 존중하고 관용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다양한 개인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의견들이 규합되어 사회를 움직이게 된다. 다수라는 것도 소수의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수의 형성을 위해서도 소수의 기초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원리인 것이다. 한 사회에서 소수의 존재가 얼마나 잘 존중되는 지는 곧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한 지를 가늠하는 잣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기본 원리가 잘 인식되지 않고 실천은 더욱 잘 되지 않는 편이다. 과거에는 흔히 민주주의 자체가 부정되는 일이 빈번했고, 요즘 들어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는 있지만 내용까지 뿌리를 내리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형식적으로 '다수결'의 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가 지켜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다수결은 민주적인 과정을 거친 뒤에 대승적 합의나 타협이 힘들 때 최종적으로 행하는 표결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민주주의는 아닌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은 강조할 개념이 전혀 아니다. 민주주의는 과정이 중요하다. 민주주의 과정은 상호 존중을 통한 토론과 협상과 타협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곧 차이와 소수에 대한 관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 기본 전제를 무시하는 일이 흔하고 허울만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다수의 횡포가 만연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삶에서도 그렇지만 공공의 기능에서도 그런 일이 벌이지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여론, 정치, 사법, 행정 등 많은 영역에서 그렇게 민주주의를 굴절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 다수당의 횡포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반목되어 오고 있다.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적인 중대 사안을 결정할 때조차도 다수의 자의적 힘이 작용하는 일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껍데기만 민주주의이고 내용은 다수의 독재가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기초가 하루 빨리 뿌리를 내려야한다. 겉모습만 갖추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명실상부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때 진정한 선진화가 가능하다. 민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첫 걸음은 차이와 소수에 대한 관용으로부터 내딛어야 할 것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소수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관용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인내심을 가지고 소통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