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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 가 일 몽 ]

       "남가 고을에서 한 번 꾼 꿈"   - 인생이 한바탕 덧없는 꿈과 같다는 뜻.

중국 唐(당)나라 李公佐(이공좌)의 소설 ≪南柯記(남가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唐(당)나라 德宗(덕종) 때, 강남인 揚州(양주) 땅에 淳于棼(순우분)이 살고 있었다. 그의 집 남쪽에는 몇 아름이나 되는 큰 괴화나무가 수십 평의 그늘을 짓고 있었는데 여름철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그 나무 밑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곤 했다. 하루는 술에 취해 누워 있는데 두 관원이 엎드려 절하며, “괴안국 국왕의 어명을 받잡고 모시러 왔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가 따라가자 괴화나무 뿌리 쪽에 있는 굴로 들어갔다. 그곳은 槐安國(괴안국)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駙馬(부마)가 되었다. 이윽고 남가군의 태수로 임명되어, 이십 년 동안 고을을 태평하게 다스리고 그사이 다섯 아들과 두 딸을 얻었는데 아들들은 다 높은 벼슬에 오르고 딸은 왕가에 시집을 보냈다. 이십 년이 되던 해 檀羅國(단라국) 군대가 침략하여 나가 싸웠으나 크게 패하고 아내는 급한 병으로 죽어 벼슬을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의 명성 때문에 찾아오는 이가 많아 역적 음모를 꾸민다고 조정에 투서가 들어가 왕은 그에게 근신을 명령했다. 순우분의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을 알게 된 왕은 그를 달래어 고향에 다녀오라 했다. 순우분이 놀라서, “저의 집이 여긴데 어디에 간단 말입니까?” 하고 반문하자, “그대는 본시 속세사람으로, 여기는 그대의 집이 아닐세” 하며 웃었다. 그가 깨닫자 본디 처마 밑에서 자고 있는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가 친구와 함께 괴화나무 굴로 들어가 살펴보니 성 모양을 한 개미집이 있었는데, 머리가 붉은 큰 개미 주위를 수십 마리의 큰 개미가 지키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가 꿈속에서 본 大槐安國(대괴안국)의 왕궁이었다. 다시 구멍을 더듬어 남쪽으로 뻗은 가지를 네 길쯤 올라가자 네모진 곳이 있고 성 모양의 개미집이 있었다. 그가 있던 南柯郡(남가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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