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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왜? 어떤 문제가 있나?
| 2015·10·10 13:57 | HIT : 1,800 | VOTE : 205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를 앞세워 정부와 새누리당이 특수작전 벌이듯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공교육의 교과서를 국가에서 직접 만드는 게 자연스럽고 효율적일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왕 그렇게 할 것이면 신속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제의 본질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태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가 걸려 있다. 교육의 미래와 나라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예민한 원칙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학교의 수업에서 사용되는 교재는 크게 네 가지 방법으로 제공된다. 국가에서 직접 저작권을 가지고 편찬하는 '국정' 제도, 국가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개인이 저술하고 국가기관이 심사하여 발행을 승인하는 '검정' 제도, 개인이나 기관에서 자유롭게 저술하고 발행한 것을 국가가 채택 여부만 승인하는 '인정' 제도, 아무나 자유롭게 저술하고 발행하여 자율적으로 채택하는 '자유발행' 제도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각 나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도를 발전시켜 왔는데 선진국일수록 자유발행 제도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하나는 자유주의가 세계의 지배적 원리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진리의 개방성 때문이다. 전자에는 이론(異論)이 공존해 왔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진리는 개방적으로 토론하며 성찰할 수록 객관적으로 투명해지고 창의적인 안목이 계발되며 지성적으로 심화된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사회적 삶에 관련된 문제에서 그 점이 중요해진다. 세상사에서 절대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최선'의 진리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개방된 조건에서 이성의 최고치가 수렴되고 검증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각 제도는 나름의 장단점을 갖는다. 국정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통제의 수월성이다. 그 대신 단점이 많다. 내용과 편집이 경직되기 쉽다. 학습 동기를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비교와 선택의 여지 없이 획일적으로 부과되는 탓에 창의적 자극이 차단된다. 출판 활동과 산업의 활력소로서 기능도 약화된다. 그리고 가장 큰 단점은 무엇보다도 정치 권력의 개입이 쉬워진다는 점이다. 독재정권들이 그 유혹에 잘 빠지는 이유다. 권력의 욕망은 진리 앞에서 자신의 모든 허물을 덮고 절대적으로 미화되길 원한다. 이는 인류의 이성에 반하는 것이다. 특히, 역사처럼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교과목의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위험한 일인다. 그에 관한 문제의식이 국제사회에서 공유되어 왔고 그에 따라 유네스코는 일찍이 교과서 자유발행 제도의 원칙을 천명하고 적어도 국정 교과서는 폐지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일부 후진독재국가에서 아직도 교과서 편찬 제도의 갈등이 발생하자 유엔 인권이사회는 드디어 2015년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나의 역사교과서를 채택할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될 위험이 크다. ...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의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채택하기까지 하였다. 베트남과 같은 국가는 이에 따라 국정 역사교과서를 검인정 교과서로 전환하였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도 이미 1992년에 '국정교과서제도는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규정과 모순’되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념과 모순되거나 역행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정제도 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 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교육의 질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국사와 같은 교과목은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하였다 (헌재 1992. 11. 12.자 89헌마88 전원재판부). 국정 교과서를 통한 정치 권력의 개입은 내용의 왜곡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정권이 교과서를 통제하는 장치가 자리 잡으면 정권의 부침에 따라 왜곡과 반작용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면서 교육현장은 물론 학계와 정치권 그리고 사회 전반에 혼란과 갈등의 불씨가 된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대개 자유발행 제도를 지향하고 있는데 그에도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성적 합리성의 보편적 여건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액면 대로의 '자유발행' 제도는 자칫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많이 부를 수도 있다. 저술의 결과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낮아져서 오류의 여과에 한계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발행 제도의 전제조건으로 객관적이고 안정적인 자율조정 여건의 구축이 필요하다. 그런 전제가 요구되기는 하지만 지성적으로 성숙한 사회를 지향할 때 그 제도의 가치는 높아진다. 선진사회에서는 마땅히 채택하는 제도다.

검정과 인정 제도는 국정과 자유발행 제도의 중간 형태이기 때문에 잘 운용하면 양쪽의 장점을 주로 살려낼 수도 있고, 잘못 운용하면 양쪽의 단점이 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제도의 구축과 운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생긴다. 장점들을 잘 살려내면 나름대로 안정감 있는 교과서 편찬 장치가 될 수 있다. 사회적 편차를 상당히 내포한 국가들은 주어진 여건을 고려하여 예측가능성의 관리가 필요한 일부 교과목들에 대하여 검인정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선진국 중에서도 자국의 역사나 국어 관련 교과목에 검인정 교과서를 운용하는 나라가 없지 않다. 국가사회의 정체성이 민감하게 관련되는 교과목의 경우에 궁극적으로 자유발행의 원리를 지향하되 최소한의 공론과 검증 과정을 체계적으로 거치기 위하여 과도적으로 '검정'이나 '인정' 제도를 채택하는 것이다. 자유발행으로 가기 전에 약간의 고삐를 남겨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학의 경우에 대부분 자유발행 제도를 따르고, 중-고등 학교에서는 해방 이후 원칙적으로 검인정 제도를, 초등학교는 국정 제도를 채택해 왔다. 선진국에 비해 뒤쳐진 상태지만 인류사회의 흐름과 대원칙을 최소한은 따르려는 고민이 반영된 셈이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인데 한 때 군사정권기에 '국정' 교과서가 사용되다가 민주화 이후 과도적 유보기간을 거쳐 검인정 제도가 복원되었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리 잡아가는 도중 최근에 (역사 교과서)국정화의 움직임이 돌출하였다. 그 발단이 교육이나 학문의 이유에서라기보다 정치적 또는 이념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제도의 순수한 진화 과정에 나타나는 내적 진통이 아닌 외적 힘에 의해 흐름을 거스르며 일어나는 예외적 일탈이라고 할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구성체에서 실천하는 것이므로 어떤 제도든지 그 적용이나 결과가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인류의 경험과 연구-분석의 결과와 섭리의 원칙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보편타당한 것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은 가능하고 필요하다. 선진국에서 그런 경험을 이미 축적해 왔고,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지닌 국가사회라면 오늘날 그 답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런 점에서 선진국을 지향하는 한국의 교육이 미래지향적으로 선택할 교과서 편찬 제도는 합리적인 검인정을 거쳐 성숙된 자유발행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순리에 비추어 볼 때, 지금 불거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은 정당화 되기 힘들다. 나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추어 국정화를 합리화 하려고 하지만 흐름과 본질에서 벗어난 당착이 될 수 밖에 없다. 억지로 근거를 만들어 낼 수록 부조리를 낳아서 미래의 불행을 예고할 뿐이다. 이는 추상적인 예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추론되는 당위의 문제다. 그런 문제의 내용을 몇 가지 예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교과서의 내용이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공론 과정을 거쳐 여과되지 않고 권력에 의해 획일적으로 편성되는 국정 제도는 21세기 인류사회의 교육현장에서 진정한 지식으로 수용되지 못한다. 관료 행정적 틀 안에서 필자들이 글을 납품하듯이 제공하여 편찬하는 국정의 지식은 학문친화적이지도 교육친화적이지도 않다. 학계와 사회의 다수가 인정하지 않거나 회의하는 지식을 강요하면 가르치는 이나 배우는 이 모두에게 저항을 부르며 교육에 대한 불신을 증가시킨다. 설령 오류나 왜곡이 많지 않은 내용이더라도 강요된 지식은 자율적으로 천착된 지식보다 거부감을 준다. 시험을 위해 억지로 암기하더라도 그것은 진정한 지식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부조리 의식을 침윤시킨다. 결국 반교육적 후유증을 크게 낳고 만다.    

둘째로 국정화의 추진이 교육 내적 동력에 바탕을 두기보다 교육 외적인 정치 세력의 의지에 따라 주도됨으로써 향후 교육현장이 정치적 풍향에 따라 동요해야 할 혼란의 불씨를 심는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집권 정부는 자의던 타의던 교과서 편찬에 자동 개입하여 입장을 반영토록 만들어 버린다. 학술적 성과와 저술에 대하여 정치권이 '편향성'을 재단하는 자체가 정치적 배경을 지니기 때문에 정치 권력의 변동에 따라 편향과 역편향의 반복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번번히 집필 진통, 출판 잡음, 학교 현장의 갈등, 학습 저항, 입시 교란, 학문적 반작용, 정치 공방, 이념 갈등, 정권 부침에 따른 혼란의 악순환 등이 필연적으로 예상된다.

셋째로 추진이 너무 성급하여 어떤 방향에서든 졸속이 될 수 밖에 없다. 학교에는 학기와 학년이라는 주기가 있고, 입시에는 예고와 준비의 시간 차가 있으며, 집필자 개인들에게는 교육과 학술 활동의 리듬이 있다. 이런 현실 생태계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일정은 필연적으로 후유증을 낳는다. 정책, 집필자, 출판사, 학교, 교원, 학생, 학부모, 사회 공중 사이에 부조화가 교차하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정상적인 교육 선진형 국가에서는 교과서의 개편에 기본적으로 보통 5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원칙 정향, 내용 집필, 실험과 검증, 여론 수렴의 과정을 거친다. 현 정부에서 대통령 임기 내 결과 산출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 국정화는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다.    

넷째로 이념적 동기에서 발원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추진 세력의 의도와 상관 없이 사회적으로 이념적 논쟁을 증폭시킬 것이다. 권력의 경직된 통제 틀로는 학문적 진리의 개방성을 충분히 흡수하며 완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외의 공론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조용히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정권의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는 일이겠지만 자연발생적으로 좌편향, 우편향, 종북, 친일, 독재, 식민사관, 민족사관, 민중 사관, 뉴라이트 사관, 보편 사관 등에 관한 토론이 사회적으로 분출되어 한편으로는 과거에 공론이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긍정적 효과도 생길 것이다. 다만, 그 토론과 논쟁이 학문적 근거에 따라 교육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 이념 진영의 구도 속에서 감정적으로 분출함으로써 소모적 갈등의 폐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로 역사는 인접국가들과 복잡한 사건들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에 관한 해석과 서술을 정부가 획일적으로 담당하며 책임지게 되어 외교적 부담을 자초한다. 편찬 내용의 작은 부분까지도 정부의 직접 행위가 되고 유일한 책임 주체가 되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전적인 책임을 직접 져야 하며 그런 구조를 이용한 타국의 간섭, 압박, 공세의 표적이 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매우 불리한 조건에 놓인다. 이는 교육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여섯째로 특정 정치인의 개인적 사연, 정치적 선거 공학, 이념 세력의 감정 이입 등이 교육과 학문에 개입하여 간섭하며 부작용을 낳는 사건이 되어 향후 나쁜 선례로 악용되기도 하고 청산해야 할 구제도의 또 하나 과제를 남기게 될 것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이미 병들어 있는 한국 교육이 하루 빨리 미래지향적으로 진화해 나가야 할 마당에 오히려 퇴행적인 부담의 못을 하나 거칠게 박아놓는 결과가 된다. 이는 교육의 개혁을 위한 긍정적 에너지까지 상당 부분 소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 때, 한국이 교과서 편찬에서 택해야 할 바람직한 길은 학문적 성과를 생산적으로 반영하면서 교육적 안목으로 검인정 체계를 내실화하고, 자유발행을 향한 여건을 성숙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편향이나 왜곡 등의 논란은 당연히 소멸하고 공교육의 정상화에도 일조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교과서 편찬 제도의 운영에서 미래지향적 진전을 이루지는 못할 망정 명분도 실익도 없는 국정화를 퇴행적으로 기습작전처럼 추진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전향적으로 공론을 거쳐 공공성 높게 기능할 수 있는 선진적 제도를 도출하며 진화시켜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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