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7-03 14:13
87 어게인 울렁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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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아큐라
![](../skin/board/basic/img/icon_view.gif) 조회 : 7,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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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danieljo11 [5248] |
1987년 6월항쟁과 현재의 촛불정국을 연관시키는 글들에 대해서 나는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당시에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명확히 기억하고 있고 그 때 체험이 워낙 강렬했던 이들에게는 작금의 스펙터클을 목도하면서 당시의 기억을 소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건 백분 이해한다. 그런데 교육감 선거에서 미친교육을 심판하지 못한다면, 촛불의 힘으로 현 정권을 끌어내려도 패배한 거라고 예단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갑자기 '87 어게인 울렁증'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번 선거에서 미친교육을 심판하지 못한다면, 일단 학부모이자 비정규직 교육 노동자이자 놀이이론가인 나의 작은 바램과 생활의 근거와 일터의 보람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개인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면에서 보아 미친교육의 서울시 수장이자 마름인 작자가 당선된다는 것은 서울시민이 대표하는 한국인들에게 "우리안의 대운하"가 얼마나 굳건한 지를 확인하는 것이 된다.
'87 어게인 울렁증'이란 간닪히 말하자면 김영삼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가 당선된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2008년에 재현될 수도 있다는 예측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공황감을 이른다. 앞선 포스팅에서 예측했듯 이인규 후보는 분명 노무현 전 정권의 지지자들인 민주당 성향의 표를 상당수 얻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범같은 명망가들이 합세한 결과로 복당녀, 문국현, 자유선진당 성향의 표를 일부 잠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주경복 - 이인규 - 공정택의 3강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된다. 향후 보수성향의 군소 후보들은 사퇴가 예상되는 바, 현 정권 지지자들의 표는 공정택 후보에게 몰리게 된다. 현 정권의 지지도가 벌써 20%를 훌쩍 넘는 정황에 더해 이들이 투표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는 당연한 가정을 보태면 공정택 후보의 득표율은 충분히 40%의 근사치를 나타낼 것이다.
전 정권을 최후까지 지지한 사람들에 더해 차마 미친교육을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교조 성향의 후보'에 표를 주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분명 20%를 너끈히 상회할 것이다. 이들의 표는 모조리 이인규 후보에게 간다고 보면 된다. 아직 한 달 남은 촛불 정국에 따라 유동적이긴 하지만, 주경복 후보의 예상 득표는 이인규 후보를 근소하게 넘어서는 정도에서 대략 10%정도 넘어서는 선까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기 서울시 교육감은 누가 될 지 뻔하다. 미친교육을 심판하겠다는 사람들 덕분에 미친교육이 존속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나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대의제에 대해 냉담하기 짝이 없던 사람이다. 더불어 선거공학 같은 건 혐오하기 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갑자기 기껏해야 임기가 22개월에 불과한 교육감 선거에 불이 붙었다. 그만큼 나는 절박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당연하다. 그래도 갑자기 87년 대선에 노태우나 김영삼이 아니라 김대중이 당선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가가 궁금해진다. 하다못해 김영삼이 당선되었어도 우리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인규와 주경복 두 후보는 단일화를 전제로 한 토론회를 몇 차례고 가지길 바란다. 단일화를 할 경우 어떤 정책을 두고 딜을 할 지도 염두에 둔 토론회를 열길 바란다. 두 후보의 철학과 성향 차이 때문에 단일화가 어렵고 단일화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나 자신도 충분히 인지한다. 그렇다고 미친교육이 이대로 질주하도록 놔 둘 수는 없다.
7월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미친교육을 심판하고 현 정권을 중간평가하는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두 후보가 1987년의 교훈을 잊지 말길 당부한다. 군부독재를 심판하겠다는 두 사람 덕분에 군부독재가 5년 더 생존할 수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울화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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