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11-05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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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의 밤이 지나고, 그 광장에서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대전에 살며 글을 쓰는 ‘천둥 작가’는 덕후(마니아·일본말 오타쿠의 변형인 ‘오덕후’의 준말)의 시선으로 그 광장을 바라봤다. 작가는 그날들 거리로 나선 평범한 이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당신은 왜, 무엇을 위해 이곳에 나왔느냐”고.
‘덕후 정체성’의 작가가 지난겨울의 광장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덕후 동족’이었다. 지난 9월 출간한 ‘팬덤에서 자유로, 1열 본능 덕후들의 민주시민 입문기’는 민주손오공릴게임예시
주의 광장으로 뛰쳐나온 덕후들 이야기다. 책머리에서 작가는 “덕후의 시선으로 광장에서 덕후들이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고 했다.
나이 오십에 밴드 덕질에 빠진 뒤 내란 맞선 광장서 덕후 동족들 만나 “덕후의 시선으로 광장 덕후들 기록”
탄핵의 강을 건너 파면의 산을 힘겹게 오르고 내려오던 지난 3삼성전자 주식
∼5월 천둥 작가는 대전과 서울에서 ‘광장의 덕후들’을 만났다. 책에 등장하는 덕후 대부분은 대전 사람들이다. 불법 계엄에 맞선 민주주의의 광장이 서울 여의도에만 있진 않았다. 전국 다른 지역에서도 수만명의 시민이 모여 빛의 광장을 만들었다. 대전의 광장은 모이는 곳(둔산동 은하수네거리) 이름 따라 ‘은하수광장’이라 불렸다. 천둥 작가는 대전과 서울의 ‘빛돈굴리기
의 광장’에서 만난 인디밴드·게임·핑크·우사기·자캐·철인3종·무협소설·뮤지컬·아이돌·애니·한복·슬램덩크 덕후 등 총 27명의 이야기를 최대한 ‘그들의 언어’로 책에 담았다.
‘전국 공주연합’이란 작은 깃발을 든 ‘핑크공주’(27)는 내란수괴가 석방되던 날 광장에서 작가에게 “긴 싸움을 지속하려면 명상과 단식으로 몸·마음을 비우라. 집착을 신원 주식
내려놓고, 연대와 사랑으로 묵묵히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집단 따돌림 트라우마로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겪는 그에게 핑크는 ‘마음의 평화’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다. 집회 때마다 핑크로 무장한 그는 “민주적인 사회라면 핑크 정도는 수용해야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건 파시즘”이라며 “세상은 뒤로 가는 것 같아도 결국 앞으로 간다. 어떤 폭력과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부패한 권력도 우리가 가진 따뜻한 사랑, 온정, 연대를 이길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바람계곡 나우시카’를 보고 세상과 생명·과학에 눈을 떴다는 ‘잡덕’(온갖 걸 좋아하는 덕후) ‘빨간망토치즈’(20대 대학생)는 은하수광장에서 “이런 동맹은 거의 ‘종족을 뛰어넘는 사랑’ 같은 일이다. 깃발 다는 법이나 집회 소식 등도 덕후들이 리트위트해준 덕분에 알게 됐다”고 했다. 계엄의 밤 “애니를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그는 “트친(트위터 친구)들과 밤잠 설치며” 분노했다. 빵집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기차 타고 서울 국회로 달려가려는데 알바 동료가 “프랑스혁명 에디션이다. 응원봉 대신 들라”며 바게트를 쥐여줬다고 한다. 그는 작가에게 “예민하고 뭐든 깊이 들여다봐 버릇하는 덕후들은 세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천둥 작가는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했다.
응원봉 대신 바게트 움켜쥔 ‘잡덕’ “덕후는 세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평화·저항의 상징’이라는 핑크 덕후 “폭력은 우리의 온정을 이길 수 없다”
본명 조용미, 필명 천둥인 작가는 대학을 졸업한 뒤 아이를 낳고 경기도의 작은 마을로 들어가 살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자연스레 교육과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의 30∼40대는 “마을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꾸미던” 시절이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쉰이 넘어서다. 그동안 부모로서 본인 경험을 살린 학부모 안내서 ‘어서 와, 학부모회는 처음이지?’와 그림책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를 시작으로 소설 ‘돌멩이를 치우는 마음’, 동화 ‘단톡방이 사라지다!’, ‘단단한 미래’ 등을 썼다. 그는 “나이 오십에 갑자기” 밴드 국카스텐 덕질을 시작했다.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설득하며 덕질 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을 책(‘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으로 내기도 했다.
“덕질은 자신을 갈아 넣을 정도로 빠져들어야 겨우 내 것으로 향유할 수 있어요. 한번이라도 나 자신, 내 가족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품어본 적이 있다면, 어떤 것은 비하하고 어떤 것은 폄하하는 편협한 시선을 가질 순 없을 거예요. 사랑할 게 많으면 미워하고 혐오할 틈이 없으니까요.”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