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8-20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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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해?”“넌 노크하고 내 심장을 그 허벅지의 입에지난달 29일 서울 구로구 가산동 시마즈사이언티픽코리아 기술연구소에서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소속 서나리 박사(왼쪽)와 시마즈 관계자가 장비를 살피고 있다. 충남대 안현주 교수 연구실 제공



한국과 일본의 경제 협력은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의 자본이 주도하는 수직적 분업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수평적 협력 모델이 많이 나오고 있다. 양국 청소년들도 과거보다 좀 더 자유로운 교류를 하고 있다. 광복 80돌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년 기획 마지막 회에서 이런 변화의 움직임을 들여다본다.




7일 찾은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쇼난아이파크체리마스터 확률
는 첫인상부터 압도적이었다. 연구실과 업무 공간이 있는 10층짜리 건물 5개 동을 하나로 잇는 직선 통로를 지나치는 데만 430m를 걸어야 했다.
도쿄돔 5개 크기인 22만㎡(6만6500평) 건물에 최첨단 연구동을 갖춘 쇼난아이파크는 생명과학 분야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최대급 신약 개발 클러스터로 꼽힌다. 연구실 1900여곳에 수준 높은 공샛별형
용 생화학 실험실, 방사성동위원소(RI) 의약품 실험실, 핵산 의약품 제조 설비 등을 갖췄다. 원래 일본 글로벌제약사 ‘다케다’가 자체 연구개발(R&D) 센터로 쓰던 것을 2018년 이 분야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에도 개방했다.
눈에 띄는 것은 한국 스타트업들이다. 지난해 9월부터 충북 첨단재생바이오 글로벌혁신특구 참여기업 가운데 8곳이TIGER삼성그룹 주식
이곳에 입주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충북도, 청주시, 충북 테크노파크 등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관절염 세포치료제, 유도만능줄기세포 치료제 등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일 경제 규모와 산업 구조가 변하며 두 나라 경제 교류 방식은 바뀌어왔다. 한국이 산업 기틀을 다지는 동안엔, 일본이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소비재를 생산하는주신왕
‘수직적 분업’이 주로 이뤄졌다. 10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1988∼2000년 한국의 대일 수출품 중 비중이 가장 높은 품목은 의류(13.5%)였다. 많이 수입한 품목으로는 반도체(10.1%), 철강판(4.8%)에 이어 기타 기계(4.2%), 섬유 화학기계(3.2%) 등 기계류가 있었다. 한국이 일본에서 기계를 수입해 옷 등 소비재를주식상한가
생산한 결과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첨단 산업이 약진하면서는 두 나라 기업의 기술·자본 수준 차이가 줄어들었다. 각자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서 상대 시장에 진출하거나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수평적 교역’이 시작됐다. 2021∼2024년 한국의 대일 수출품 상위 1∼3위는 석유제품(18.4%), 철강판(8.2%), 반도체(4.4%) 등 중간재였다. 주요 수입품 역시 반도체(14.4%), 반도체 장비(10.6%), 철강판(5.1%) 등이었다. 한·일이 산업의 허리 역할인 중간재를 주고받는 식으로 교역이 바뀐 것이다.
한국 스타트업과 손잡은 일본 제약
쇼난아이파크 입주 기업이며 당뇨병 환자 발에 생기는 질환 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유스바이오글로벌의 유승호 대표는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곳에서 한국보다 발전된 임상 실증 체계를 비롯해 투자 유치, 글로벌 제약기업들과 투자 논의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후생노동성과 의약품의료기구종합기구(PMDA), 재생의료 산업계와 의료기관들이 장기간 임상 안전성과 자율진료 경험 등을 축적했고,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상호 인증제도도 존재해 신뢰도가 매우 높다”며 “쇼난아이파크를 통해 스타트업들이 교류하기 힘든 정부 기관과 관련 기업들을 한꺼번에 만날 기회도 생긴다”고 짚었다.
일본 재생의료 전문기관인 오다 클리닉과 협력해 모발재생 치료제와 ‘엑소좀’을 이용한 치매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리코드’의 문지숙 대표(차의과학대 교수)는 “쇼난아이파크에서는 첨단 연구시설과 장비 활용이 가능한데다 신속한 기술 실증과 주요 기업들을 상대로 투자 유치 기회도 얻는데, 스타트업 단독으로는 실현하기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쇼난아이파크 쪽도 한-일 협력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후지모토 도시오 쇼난아이파크 대표이사는 “일본에는 10곳 이상 글로벌 제약기업과 대학들이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 정작 관련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이들이 적다는 점이 늘 아쉽다”며 “한국 특유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진 스타트업들이 일본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본 기초학문-한국 응용연구 시너지 커”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세우는 연구개발 거점도 눈에 띈다. 일본 정밀기기 회사 시마즈제작소(시마즈)는 다음달 충남대에 산학협력 연구 시설인 ‘스마트랩’ 개관을 앞두고 있다. 충남대가 연구 공간을 마련하고, 시마즈가 바이오 연구 등에 쓰일 30억원어치 정밀측정기기를 무상 제공하는 방식이다. 충남대는 생명과학·농학·약학·의학·수의학 등 대학 연구진은 물론, 대전 지역 300여개 바이오 스타트업에도 시설을 개방할 방침이다. 시마즈 직원이 상주하며 기기를 관리하고 작동을 돕는다.
시마즈는 1875년 교토에서 창립된 회사로 실험실에서 쓰이는 각종 분석계측 장비와 항공기 부품, 의료기기 등을 생산한다. 2002년 이 회사 연구원인 다나카 고이치가 학사 출신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연구개발 역량으로도 유명하다.
시마즈와 충남대는 산학 협력이 서로에 ‘윈윈’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마즈엔 한국 시장에서 저변을 넓힐 기회다. 충남대 연구진이 시마즈 장비로 연구 성과를 올리면 학계에서 시마즈의 브랜드 가치도 높아진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충남대는 신진 연구자나 지역 스타트업이 고가의 실험 장비를 쉽게 쓸 수 있어 환영한다. 김정겸 충남대 총장은 “유망 아이디어가 있어도 고가의 측정 장비가 없어 연구 데이터를 쌓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많다”며 “충남대·시마즈는 물론 지역 기업, 국책연구기관 등이 공동으로 연구해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안현주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교수도 “다나카 연구원의 노벨상 수상처럼 일본 기업은 기초과학 연구가 강하고, 한국 대학은 장비 기반의 응용 연구를 잘한다”며 “양쪽 강점이 달라 협업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양성자치료센터에서 삼성서울병원과 일본 스미토모중공업 직원들이 양성자 치료 장비를 함께 점검하는 모습. 이 병원 양성자치료센터에는 스미토모 소속 엔지니어 3명이 상주하며 장비를 관리하고 공동 연구에 참여한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세계 1호’ 첨단기술 위한 공동연구
두 나라 기관이 세계적으로 개발 경쟁이 붙은 첨단 기술을 선점하고자 손잡는 경우도 있다. 삼성서울병원과 일본 스미토모중공업(스미토모)의 초고속 고선량 양성자빔 치료(플래시·FLASH) 연구다. 양성자 치료란 수소 원자의 핵을 이루는 양성자를 빛의 60%에 달하는 속도로 가속시켜 환자 몸에 쏘아 암을 파괴하는 치료법이다. 미래 암 정복을 실현할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삼성서울병원은 2015년 국내 두번째로 스미토모의 양성자 치료기를 도입했다. 이어 지난해 8월엔 스미토모와 양해각서를 맺고, 치료기의 방사선 투사 속도를 1000배 높이는 ‘플래시’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박희철 삼성서울병원 양성자치료센터장은 이 기술에 대해 “치료 부작용을 더욱 줄일 가능성이 있어 학계가 주목하고 있지만, 아직 통상적 진료 환경에 적용한 곳은 없다”며 “조기 폐암·간암 환자에게 테스트할 만큼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1차 목표”라고 소개했다.
스미토모에도 삼성서울병원은 기술 선점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테스트베드다. 스미토모가 양성자 치료기를 공급한 일본(4곳)·대만(2곳) 등의 병원에 견줘, 한국 ‘빅5 병원’으로 꼽히는 삼성서울병원의 규모(1767병상)와 양성자 진료량(하루 평균 50여건)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스미토모 관계자는 “삼성서울병원은 (양성자 치료기로) 다양한 질환을 다루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치료 건수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스미토모) 양성자 치료 장비 명성도 크게 제고됐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대만의 양성자 치료 시스템 사용자(병원)들과도 플래시 공동연구를 하고 있지만, 소동물 실험 단계까지 진전된 건 삼성서울병원과의 연구가 유일하다”며 “삼성서울병원 주도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 국산화 시도, 정치적 갈등은 걸림돌
다만 한-일 협력엔 불안 요소도 크다. 일본 정부가 정책적으로 국산화를 추진하는 반도체 등의 분야에선 기업들이 협력보다 경쟁을 하게 될 여지가 크다. 일본 정부는 2021년부터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 등에 따라 반도체 공장을 자국에 짓는 데 대규모 보조금을 쓰고 있다. 대만 티에스엠시(TSMC)가 지난해 2월 일본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라피더스가 2027년까지 지토세 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와 도요타 등 대기업 8곳이 공동 출자한 회사다.
지금까지는 한·일이 각각 상대에게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수출했지만, 일본이 반도체 국산화·고성능화를 마치면 이런 식의 무역은 후퇴가 불가피하다. 한국의 반도체 대기업들과 활발히 협업을 모색하던 일본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먹거리도 자국으로 옮겨갈 수 있다.
과거사 등을 둘러싼 갈등이 경제 협력을 가로막을 가능성 역시 여전하다.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듬해 일본은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꺼내 든 바 있다. 일본 반도체 생산장비 업체의 한국 지사 관계자는 “한국에 비교적 유화적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퇴진 압박을 받고 있어, 한국에서 사업하는 기업들은 촉각을 세운다. 자민당 내 극우 성향 인사가 새 총리가 돼 강경 발언을 쏟아내 언제든 양국 관계가 경색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천호성 기자, 도쿄/홍석재 특파원 rieu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