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8-2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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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오림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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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원이 부족해서 야생동물도 먹는 건가요?) 뭐, 먹을 만했어요.” -대동강 맥주가 정말 그렇게 맛있나요? “아, 그건 세계 최고입니다. 이유가 있어요. 영국 설비로 만들었거든요. 북한은 우리와 수교하자마자 파산한 영국의 유서 깊은 양조장을 통째 수입해 가 자신들이 재조립해 2002년 북한 국영 맥주를 출시했어요. 대동강 지하수로 만들었어도 영국 에일 맛이 납니다.” -우리도 도입해야겠군요. “하하, 그래도 좋겠네요.” 북한 국영 맥주. 한 영국 기자가 "한국 맥주가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해 유명세를 탔는데, 파산한 영국 양조장의 설비를 2002년 통째 들여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008년 북 대사대리로 잠시 근무했다가, 2018년 정식 대사로 부임했지요. 10년간 변화가 있던가요? “평양은 확실히 화려해졌더군요. 새 빌딩도 생겼고 미래과학자거리나 여명거리, 김일성 광장 등 곳곳을 휘황찬란하게(glitzy) 꾸몄습니다. 북핵 개발에 따른 국제 제재 탓인지 자동차들은 노후했지만. 반면 평양 밖은 거의 달라진 게 없었어요. 버스나 트럭도 드물고, 잘해야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요. 의료 시설은 빈약하고, 농기계도 거의 없고, 소달구지가 흔했습니다.” -주민들과 어울리기도 했습니까? “외국인을 보면 주민들은 긴장합니다. 눈 마주치거나 말 붙이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명절이나 휴일에 술 한잔 들어가면 경계가 좀 풀어지죠. 골목에서 어울리다 가라오케에 끌려 들어가 노래를 부른 적도 있습니다. 자주 보는 의사, 이발사와는 더 친하게 지냈고요. 제가 조선말을 좀 구사하니 친숙하게 느껴졌는지 ‘영국 가정에선 여자가 주도권을 갖나’ 같은 것도 묻더군요.” -김정은을 봤나요? “행사에서 본 적 있어요. 대화는 못 했습니다.” -딸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여왕이 하회마을서 구두를 벗기까지 외교가 최고의 지한파인 크룩스 대사는 "한국과 영국은 수교 142년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과 법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었다"며 "양국의 미래는 더 '익사이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크룩스 대사와 한반도의 진한 인연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스물넷의 외교관은 한국 발령을 앞두고 1993년 한국어 연수를 왔다. 당시 주한 영국 대사관 한국 직원으로 대전 엑스포 영국관 운영을 맡은 김영기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크룩스는 이듬해 2등 서기관으로 부임했다. 이들은 1996년 결혼, 첫 아이도 서울서 낳았다. 임기가 끝날 무렵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첫 국빈 방문이 결정됐다. 크룩스는 당시 “내가 현장을 책임지고 기획하겠다”며 임기 연장을 요청했다. -1999년 여왕 방한의 하이라이트는 안동 하회마을 방문이었죠. “원래 서울 북촌이나 익선동 한옥 거리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왕은 ‘멀더라도 한국 역사와 전통의 정수를 보고 싶다’고 했어요. 안동이 낙점됐는데 여왕 73세 생일이 겹쳐 행사가 커졌어요. 제가 준비차 안동을 다섯 번 오갔습니다. 마침 아내가 의성 김씨로 안동 출신이어서 문중 분들과 이야기가 잘 됐어요.” 1999년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고택 충효당에 오를 때 구두를 벗은 모습. /조선일보DB -당시 여왕이 충효당 고택에 들어가며 구두를 벗은 모습이 기억납니다. 미리 계획한 건가요? “아뇨. 여왕이 한국 전통을 존중하는 취지로 즉석 결정한 거예요. 영연방 수장이 공개 석상에서 맨발을 보인 건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에요. 실무진도 놀랐어요.” -양국 관계가 더 끈끈해졌지요. “2022년 여왕 서거 때 안동 어른들이 대사관을 찾아 조문하고, 올 초 경북 산불 땐 찰스 왕이 ‘어머니가 안동에서 받은 따뜻한 환대를 기억한다’며 위로문을 보냈습니다.” -당신에게 한국은 어떤 곳인가요. “처가이자 제2의 고향이죠. 살면 살수록 정을 느끼게 돼요. 장남(28)이 한국에서 태어났고, 차남(25)은 영국서 났지만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울 정도로 엄마의 나라를 자랑스러워합니다.” -한국의 어떤 점이 좋습니까. “사람들이죠. 특유의 ‘하면 된다(can-do) 정신’과 ‘빨리빨리’의 역동성은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본 한 세대 정도 기간에도 믿을 수 없는 발전이 있었어요.” ‘경북의 사위’가 본 한국 -30년 전과 어떻게 다른가요? “그냥 완전히 다른 나라 같아요. 이제 서울은 진정한 국제도시예요. 1990년대 이태원에는 미군 취향 식당 일색이었는데 지금은 세계의 온갖 식당이 들어섰죠. 동시에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도 굉장히 커졌습니다.” 콜린스 대사는 3년간 주북대사를 지내고 2022년 3월부터 주한대사로 주재하고 있다. 1892년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서울 영국대사관저엔 한국 백자와 유기 주전자 등 고미술품이 놓여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K 문화가 영국서도 인기죠? “말할 것도 없죠. 6월 런던에 갔다가 K팝 그룹 공연에 들렀는데, 내 평생 그렇게 엄청난 환호는 처음 들었어요. 귀가 어찌나 아픈지(웃음). 북아일랜드 시골의 80대 할머니가 ‘한국 드라마를 보려고 한국어를 배운다’고 하더군요. 영국 정치인 등 유력 인사들이 휴가를 한국에서 보내고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런 위상에 걸맞지 않은 단점이 있다면요. “영국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그리고 친구로서 말한다면, 한국은 평등과 포용성이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도와 외형은 갖췄지만 인식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양성 평등을 예로 들면 OECD 국가 중 한국 여성의 교육 수준은 최고인데 남녀 임금 격차도 여전히 최고예요. 여성 인력만 잘 활용해도 한국 경제가 훨씬 발전할 텐데요.” -한국 민주주의는 어떻게 봅니까?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치 상황을 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위협받으면 참지 않는다는 걸 확인시켰죠. 제가 본 정권 교체만 김대중, 이명박…(손가락을 꼽으며) 다섯 번이나 되는데, 항상 합법적이고 평화적이었다는 것도 놀라워요. 다만 진보·보수 체제가 자주 바뀌다 보니 정통성 투쟁이 극렬해졌어요. 양극화된 세력이 서로 ‘우린 애국자, 너흰 약탈자’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 양극화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 아닌가요? “물론이에요. 그런데 한국이 유독 극심(acute)해요.” 북아일랜드 시골 소년의 꿈 크룩스 대사는 영국에 속하지만 종교·민족 분쟁의 화약고였던 북(北)아일랜드 출신이다. 1969년생으로 1972년 ‘피의 일요일’ 등 극렬한 분노와 갈등, 폭력을 목격하며 자랐다. 그는 “항상 국경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 적이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갈등을 풀어가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외교관이 됐나요? “북아일랜드 시골(던개넌)에서 태어나 열 살까지 근방을 벗어난 적 없어요. 외국은 열다섯에야 처음 가봤지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세계지도를 보면서 큰 세상으로 나갈 미래를 꿈꾸곤 했어요.” 케임브리지대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전공하고, 현대언어학 석사 학위까지 받은 크룩스 대사. 영어부터 한국어까지 6개국어를 구사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케임브리지대에서 언어학을 공부했지요. 몇 개 국어를 구사합니까? “제가 외국어에 소질이 있었어요. 대학에선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전공했는데, 한 번도 못 가본 나라들이었죠. 외교관이 돼 배운 한국어와 인도네시아어, 중국어…. (조선말까지 7개 국어인가요?) 하하, 그렇게 세도 되나요?” -외국어 외에 외교관에게 필요한 자질은 뭔가요. “외교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입니다. 호기심이 필수죠. 상대국 모든 분야에 관심 갖고 찾아다니며 소통하려는 에너지가 있어야 해요. 어떤 것이 결정적인 외교의 순간이 될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 나라에 대한 깊은 이해, 바로 애국심입니다.” -한국과 영국이 1883년 수교한 지 142년입니다. 미래 관계는 어떨까요? “양국은 전혀 다른 나라지만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무역, 시장경제와 법치라는 가치의 면에선 강력히 연결돼 있어요. 영국은 80년 전 조선의 독립을 지지했고, 6·25 전쟁 땐 미국 다음으로 많은 8만명을 파병했습니다. 1000명 넘는 영국 젊은이가 한국의 자유를 지키려 목숨을 바쳤어요. 이런 공통의 가치와 우애는 갈수록 빛을 발할 거라고 믿습니다.” -영국은 브렉시트(Brexit·영국 EU 탈퇴)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사정이 어떻습니까? “재정 악화와 안보 불안을 겪고 있지만, 역사 존중과 일관된 전통, 정치 안정을 토대로 변화에 대응해 가고 있습니다. 그게 영국의 힘이지요.” -미국의 리더십 변화로 자유 진영의 결속이 느슨해졌는데요.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자유무역과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면서 세계가 불안(volatile)해졌습니다. 이럴 때 함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러시아를 위해 파병한 북한의 위협에 한목소리를 내고,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하는 것이 영국과 한국이 계속 협력할 동기가 될 겁니다.” 외교는 ‘끈질긴 대화’ 크룩스 대사가 주북대사 시절 사용했던 북한산 영조(영국-조선어)사전과 조영사전. 한국이 미국식 영어를 가르친다면, 북한은 영국식 영어를 정규교과로 배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영국과 북한은 사실상 적대국인데, 관계의 끈을 안 놓는 이유가 뭡니까? “어떤 경우에도 대화 자체는 유지해야 한다는 정신입니다. 영국은 한반도 평화라는 큰 목표를 위해 북핵 개발을 저지하고, 인권 문제도 끈질기게 지적해 오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대화의 통로가 있어야 가능하죠. 저는 북한 관료들 만날 때마다 말했습니다. ‘대량 살상 무기를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것이야말로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요.” -한국 정부가 대북 방송을 중단하는 등 유화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북한이 대화에 나올까요? “다시 말하지만 대원칙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입니다. 대화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이니, 장기적 관점에서 포함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겠죠.” -곧 한미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1기 때처럼 또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삼자가 말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트럼프 대통령도 달라졌고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달라졌으니 상황이 다를 겁니다. 제가 2019년 평양에서 보니, 2차 하노이 회담 직전까지도 북한은 기대가 매우 컸어요. 그런데 회담이 실패했죠. 북한은 ‘원하는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을 거예요.”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와 영기 크룩스 부부가 2023년 대통령 국빈 방문에 동행했을 때. /주한영국대사관 제공 인터뷰를 마무리할 무렵, 지나가던 아내 영기씨가 크룩스 대사에게 뭔가 밖에서 있었던 일을 작게 이야기했다. 남편은 한국어로 “어어, 그래, 잘했어”라고 했다. 수수한 차림의 크룩스 부인은 촬영 요청에 “아유, 저는 됐어요”라며 극구 사양했다. -좋은 결혼 생활은 좋은 외교와 같은가요? “그건 제가 아니라 아내가 알아요. 저 사람이 뭘 어떻게 하기에 30년째 가정이 잘 유지되는 건지 솔직히 저도 잘 몰라요(웃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