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11-0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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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나주 샛골쪽염색보존회 단체전 '자연색의 감각' 전시회가 열린다. 단순한 쪽염색 전시가 아니라 시간과 감각의 전시라고 할 만하다. 이 전시는 국가무형유산 염색장의 전승과 예술적 확장을 함께 보여주는 생애 서사적 장면을 담아낸다. 그 중심에 나주시 다시면 즉, 영산강 샛골의 물빛과 바람이 있고 보유자 정관채의 오랜 세월이 있다. 그이가 전해준 쪽빛 원리를 넘어 색을 삶으로 실천하는 이들이 모였으니 가히 청어람의 풍경이다. 쪽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잎과 뿌리, 흙과 물, 사시사철의 계절이 한데 엉겨 빛을 낳고 생명을 낳는다. 정관채 보유자는 나주의 기후와 토양, 물길의 특성로체시스템즈 주식
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실천해온 장본인이다. 팔월의 쪽잎을 베어 항아리에 삭히고 굴껍질과 잿물을 섞어 이른바 꽃물을 만든다. 기도하는 시간이며 수행하는 시간을 견뎌 색과 빛이 버무린 화엄의 세계가 탄생한다. 그가 만드는 염료가 영산강과 남도 하늘의 색깔을 닮더니 이제는 전국으로, 세계로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청어람한 제자들 작품을 인사주식초보공부
동 KCDF갤러리에 모아 전시하는 것이 어찌 단순한 뽐내기라고만 하겠는가. 공간과 시간을 가로지르는 서사에 주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역에서 태어난 색이 도시공간에서 현대의 미의식으로 번역되는 과정이랄까. 아니 전통의 뿌리와 현대의 감각이 교차하는 자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쪽빛이 품은 세계들이 또다시 여러 색을 품고 더 그윽하게 피어나는 현장을 마주슬롯
한다. 쪽빛을 얻는 과정은 판소리의 득음을 닮았다. 폭포 아래서 목을 단련하던 명창이 '한'과 '숨'을 버무려 소리를 얻듯, 염색장과 제자들은 기다림과 반복, 발효와 환원을 넘어 어떤 색에 도달한다. 색은 단번에 피어나지 않는다. 여러 번 물에 담그고 꺼내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시간을 건지고 공간을 건지고 우리네 삶을 통째로 건져야 나오는 색들이다컴퓨터관련주
. 쪽빛이 그저 기술이 아니라 시간이 직조한 음색(音色)이라는 말하는 까닭이다. 이 전시의 작가들은 아마추어에서 프로까지 다양한 군을 형성한다. 염색의 화학을 넘어 감각의 철학을 이루는 이들까지 이른바 득색(得色)의 시간과 철학을 공유해온 사람들이다.?

근원과 미래를 가로질러, 스승의 항아리에서 건져낸 제자들의 색
빅tv
샛골쪽염색보존회 작가들은 전통의 기술을 전수받은 전승자이자 창작자인 동시에 교육자와 실험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이다. 전시의 주제들을 보면 이들이 어떻게 전통과 현대를 감각적으로 엮고 교직하였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출품작 180여 점은 원단의 조형성에서 설치와 오브제의 확장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관통한다. 보유자 정관채의 작업을 포함하여 원단 염색작품들은, 씨앗을 심는 일에서 염재를 익히고 발효시키는 일, 원단을 물들이고 건조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질료가 우주의 색으로 탄생하는 서사를 가감 없이 드러내 준다. 옥사, 모시, 삼베, 무명 등 정관채의 36필 원단을 비롯 각각의 작가들이 출품한 원단까지, 동일한 염료라 해도 직물의 조직, 매염의 방식, 발효의 상태에 따라 그네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마음들이 스며드는지 선연하게 보여준다. 전통이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변이와 재구성의 체계이며 염색하는 이들의 마음자리에 따라 천차만별 우주의 색을 창출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다. 이들 작품을 몇 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음미해 본다. 자연과 시간의 층위를 회화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천연 발염과 식물염을 이용해 자연의 계절감과 빛의 흐름 을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염색을 '그림의 대체물'이 아니라 '그림의 기원'으로 이해하는 시선이랄까. 이들은 자연의 계절감과 빛의 흐름을 천 위에 번지게 하며, 발염과 식물염의 색을 회화적 언어로 번역한다. 염색이 붓질을 대신하고 천은 화면이 된다. 천의 결 위에 시간의 층을 쌓으니, 마치 봄날의 미세한 바람결이 흔들려 자연의 감정을 드러내는 듯하다. 직조와 호흡, 반복의 미학을 드러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염색된 실이 직조되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리듬'을 형상화한다고 할까. 작업의 반복, 시간의 이동이 실의 결에 남아, 직조 자체가 명상적 행위가 된다. 직조는 노동의 흔적이며 염색은 그 리듬에 생명을 부여한다. 색들이 짙고 옅음으로 호흡하여 고요한 질서를 낳게 되니 이 반복을 어찌 시간을 짜는 예술이라 아니 하겠는가. 반복이 만든 시간의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색과 향, 촉각이 만나 감각을 확장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쪽빛을 오감의 감각으로 확장하는 작업이다. 쪽은 향을 담고 바람들 흔든다. 흔들림이 질감을 낳으니 색은 시각을 넘어 몸의 기억으로 전이된다. 바느질과 기억의 색, 여성적 서정을 드러낸 작품들도 선보인다. 여성성의 그윽한 정조, 자수와 봉제의 섬세한 손길이 염색의 깊이를 깊게 해준다. 실의 궤적은 곧 시간의 서사일 것이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가 지닌 서사로 확장될 수 있겠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이 바느질을 어찌 단순한 장식이라 하겠는가. 삶을 온전히 꿰매는 라이프스토리인 것을. 노동의 기억과 발효의 서사를 다룬 작품들을 선보인다. 염색의 공정을 서사화한 작품이라고나 할까. 항아리 속 발효, 환원의 기포, 반복된 염색의 횟수가 화면의 리듬이 되고 화선지 같은 직물의 파동이 된다. 이 과정들은 마치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완숙해지는 것처럼, 숙성과 환원과 순환의 서사를 예술적으로 체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염색장의 방, 스승의 항아리를 돌아나와 공간과 시간의 변주들을 마주한다. 어떤 작품들은 스승을 닮으려 하고 어떤 작품들은 방작에서 창작으로 치닫는다. 스승에게 배웠으되, 스승보다 더 푸르게, 곧 청어람의 현현이다.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하여 이 전시의 가장 큰 미덕은 '느림의 시간'이다. 이 느림은 단순한 기술적 조건이 아니라 존중과 인내의 철학이다. 그 속에서 쪽빛은 단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천변만화하는 우주의 색으로 재구성되고 이것은 다시 존중, 감응, 배움의 윤리로 승화된다. 『자연색의 감각』 전시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시각의 언어로 다시 엮으며 전통이 여전히 현재를 물들이는 살아 있는 문화임을 증명하는 자리다. 영산강 유역의 문화가 현대의 예술로 이어지는 다리이자 남도 무형유산이 전국으로 세계로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한 국면을 읽을 수 있는 시공이니, 어깨 겯고 함께 함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나주 샛골쪽염색보존회 단체전 '자연색의 감각' 전시.

나주 샛골쪽염색보존회 단체전 '자연색의 감각' 전시 포스터.

남도인문학팁

샛골쪽염색보존회 '자연색의 감각' 전시
염색장 정관채의 제자들 및 회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11월 5일(수)부터 23일(일)까지 19일간 인사동 KDCF갤러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서울 종로구 인사동 11길 8)에서 진행된다. 국가무형유산 '염색장'의 가치 확산과 현대적 재해석을 위해 준비되었다. 보유자, 이수자, 전승교육사, 후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작품을 전시하고 전승의 의미를 나누며 창작의 연속성을 강화하는 자리다. 전통 염색이 공예, 패션, 디자인, 공간예술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새로운 감각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키기 위한 계기를 마련한다. 제1전시장은 전시장 천장의 조명 구조물을 활용하여 다양한 원단 작품을 설치한다. 제2전시장은 설치작품, 조형물, 섬유공예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한다. 쪽빛과 자연 재료, 염색기법을 결합한 복합 설치를 통해 자연적, 정서적 감각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제3전시장은 염색장의 역사와 철학을 소개하는 영상, 도구, 전승자료, 기록물 등을 전시한다. 총 39명(보유자 1명, 이수자 및 회원 작가 38명)이 참여하며 총 출품작은 180여 점이다. 11월 8일(토) 오후 2시에 전시 오픈식 및 부대 행사가 열린다. 유럽, 미국 등 해외에서 나주쪽염색보존회를 방문하여 배우거나 장기간 레지던시를 하는 경향을 보면, 이번 전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전시라고 할 만하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