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8-2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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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조차 불공평하게 떨어졌다.
볕이 들지 않는 자리를 그냥 내버려두면 살고 죽는 일은 오직 하늘이 결정했다.
“여기는 특히 골고루 줘야 해요.”
준형(56)이 봉분에 이끼 억제제를 뿌리며 말했다. 조원들이 그의 설명을 듣고 ‘공정과 방치의 관계’를 이해했다.
묘지도 햇빛을 두고 투쟁했다. 죽은 자는 소멸해서 과거로 갔지만 죽어 묻힌 자리는 종결되지 않는 현재를 살았다. 볕을 끌어당긴 묘지와 차단당한 묘지는 ‘죽음 뒤’까지 양지와 음지로 분리된다는 사실을 침묵으로 일깨웠다.
“동향은 그나마 나은 편인데요.”
햇빛을 받는 방향 예금이자 비교 에 따라 묘지의 상태도 달라졌다. 남향은 묘지에게도 좋았다. 볕을 빨아들인 잔디가 푸르게 묘를 감쌌다. 남쪽을 바라보지 못하거나 남향이어도 나무에 빛이 막히면 잔디는 앓거나 죽었다. 야윈 볕을 조롱하며 봉분에서 이끼가 흥했다.
매달 둘째 주 일요일 오전마다 모란공원(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앞은 분주해졌다. 낯익은 얼굴들이 서로의 안부를 아파트 대출한도 물었고 처음 온 얼굴들은 자기소개를 했다.
흥선대원군이 묻힌 봉우리에서 이름을 딴 묘지에 1970년 전태일이 묻혔다. 그의 정신을 따라 살다 간 사람들이 한명씩 찾아오면서 1만3000여명의 망자 사이에 열사 200여명이 모였다. 유족 외엔 돌볼 사람 없는 사설 공동묘지였다. 열사들과 인연 있는 사람들(‘마석 민족민주열사희생자묘역 정비단’) 마산우리파이낸셜 이 2013년부터 묘지를 돌보기 시작(남양주 시민 중심의 ‘모란공원사람들’은 2003년부터 활동)했다. 출발은 네댓명이었지만 지금은 매달 30~60명이 자원해서 참여했다.
인사를 마치고 조를 배정했다. 200여기를 6개 구역으로 나눠 6개 조로 편성했다.
“2조는 이쪽입니다.”
준형이 길을 인도했다. 청 국제결혼중개업체 소도구와 이끼 억제제, 장갑, 걸레, 분무기, 톱 등을 챙긴 조원들이 그를 따라 묘지 사이로 들어갔다. 그는 4년째 정비단 단장을 맡고 있었다.
“우선은 청소가 기본이에요.”
준형이 묘지 주변을 치우며 시범을 보였다. 추모제 뒤 남은 꽃이나 펼침막 등을 수거해 포대에 넣었다.
“먼지를 없애고.”
국가장학재단 전환대출바짝 마른 국화를 빗자루 삼아 묘소 상석을 쓸었다.
“새똥도 제거하고요.”
묘비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 뒤 걸레로 닦았다.
“자 이제 풀을 뽑읍시다.”
2구역엔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을 했던 열사들이 모셔져 있었다. 문익환·박용길 부부, 한충석, 김희상·김충희 부부, 김병권, 박석률 등의 묘가 그들의 손길을 받았다. 사망 당시 이미 고령이었던 어느 열사의 무덤엔 더는 찾아올 가족이 없는 듯 보였다. 돌봄을 받지 못해 잡초가 무성한 봉분 앞에서 준형이 말했다.
“나름의 역사와 이유들이 있어요.”
무덤마다 봉분의 모양새가 달랐다. 봉긋하게 솟은 봉분은 대개 묘역 조성(1966년) 초기에 전통 양식을 따랐다. 돌로 테두리를 두르고 그 위에 올린 사각 봉분은 유족이 택한 방식이었다. 봉분 없는 평장에 잔디 대신 자갈을 깐 묘소들은 정비단이 유족에게 권했다.
햇빛과 봉분과 이끼와 잔디는 서로의 생존에 간섭하고 형태를 규정했다. 부모는 일찍 죽은 자식에게 높은 봉분과 고운 잔디를 주고 싶었으나 햇빛에 닿지 못한 잔디는 부모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이끼에 잠식당했다. 지면에서 이격시킨 사각 봉분의 잔디들도 흙과 멀어질수록 수분을 머금지 못해 누렇게 말라갔다. 회생 불가능한 봉분을 확인하면 정비단은 유가족을 수소문해 ‘사초’(莎草·죽은 잔디를 새로 까는 일)가 시급하다고 알렸다. 유족이 동의하면 정비단이 대신 작업했다. 사초 뒤엔 평장으로 바꾸도록 유족을 설득했다. 봉분의 생사를 잔디의 ‘능력’에 맡겨둬선 안 됐다. 햇볕의 양에 따라, 무덤의 위치에 따라, 고인의 명성에 따라, 찾아올 인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죽음의 자리마저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준형은 신경 썼다.
“광주까지는 못 가도 남양주까지라도 가자.”
기억은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서울에 사는 준형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광주 동문들을 불러 모란 정비단에 합류시켰다. 모란공원의 열사 묘역을 가꾸는 것은 광주 망월동에 묻힌 후배의 무덤에서 이끼를 걷어내는 일이기도 했다. 말라죽어선 안 될 그 기억엔 준형도 있었다.
“추. 락. 사.”
1997년 9월16일 추석.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 세 글자를 봤을 때 이준형은 ‘이진수’였다. 학생운동으로 수배 중이던 그는 준형 대신 진수란 이름으로 가구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가게 창고에서 먹고 자며 숨어 지냈다. 배달을 다니던 동네 버스정류장에서 이준형의 얼굴이 컬러로 박힌 수배 전단을 볼 때마다 이진수는 전단을 떼지도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가 손님 없는 명절날 접한 학교 후배이자 동지였던 준배의 의문사(경찰에게 돈·향응을 받은 지인의 밀고로 체포 직전 도피하다 추락·폭행 뒤 사망)는 지금까지도 시들지 않은 충격이었다. 장례 행렬에 섞여 몸을 감추고 따라 걷던 그는 망월동 묘역을 앞두고 수배자를 찾는 경찰들을 피해 사라졌다. 준배의 자리를 채우려고 운동 현장으로 복귀한 뒤 이듬해 체포됐다. 출소한 날 준배의 무덤을 찾았다. 이한열 옆에 박관현, 박관현 옆에 김준배가 있었다. 그 자리에 준배가 눕기까지의 이야기(☞7회 ‘현우와 쌀봉이’)는 나중에 들었다. 준배의 거처를 경찰에 알린 사람은 그의 다른 후배였다. 후배에게 양심선언(2001년 9월6일)을 하라고 설득하며 준형은 도망치는 기억을 막아섰다. 누군가가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때 누군가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기억이 덩굴식물처럼 세월을 휘감았다.
준배에게 ‘망월동 자리’를 만들어준 두 사람 중 한명이었던 선배가 정비단 후배들을 만나러 모란공원에 온 적이 있었다. 어느 열사의 추모제에 참석하러 간 후배들을 기다리며 선배 혼자 최명아(노동운동가·1998년 사망)의 무덤을 사초(2019년 6월)했다. 2년 뒤 새벽에도 선배는 혼자였다. 팀을 꾸려 건설현장 일을 했던 그는 사무실에서 혼자 자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준배는 ‘12·3 내란의 밤’에도 준형을 국회 앞으로 이끌었다. 이튿날 아침은 ‘김준배 열사팀’(준형이 꾸린 ‘준배생각’ 등 열사를 기리는 서울·경기 지역 사람들)이 국회 앞에서 민주유공자법(지난해 5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맡은 날이었다. 모란공원 멤버들 다수가 유공자법 추진단에서 활동했다. 예정대로 시위를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국회 앞으로 가야 했다. 비상계엄 포고령 1호는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집회 행위를 금”했다.
추진단 소통방에서 소식을 주고받으며 그는 덜덜 떨었다.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광주에서 대학(1988년 충남 보령에서 이주·입학)을 다니며 사진과 영상으로 수없이 봤던 ‘80년 5월’의 참혹들이 떠올라 한겨울에도 두 손에서 땀이 났다. “국회 앞으로 가면 무조건 잡혀간다”는 생각에 아내와 딸 몰래 짐을 꾸렸다.
삐리릭.
소리 죽여 집을 빠져나오는데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가족들이 붙잡으러 뛰어나올 것 같아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주차장으로 달렸다.
국회 근처에 차를 세운 뒤 운전면허증을 품에 넣었다. 5·18 때 계엄군 총에 죽은 희생자들 중 신원 확인이 안 돼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주민등록증은 차에 뒀다. 실종될 경우 자동차에서 발견된 주민증과 주차 기록이 그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하는 단서가 되길 바랐다.
1인 시위 장소인 국회 3문 쪽으로 다가갔다. 감시가 느슨한 장소를 골라 국회 담을 넘었다. 헬기들이 굉음을 일으키며 국회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헬기와 군인들을 찍었다. 광주의 오랜 고통은 기록의 부족 탓도 있었다. 계엄군에 들키지 않으려고 어두운 곳을 찾아 몸을 숨기며 렌즈를 맞췄다. 준배의 장례 행렬에 끼어 경찰 눈에 띌까, 사방을 두리번거렸던 27년 전보다 공포는 훨씬 가깝고 또렷했다. 시민들과 뒤엉켜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막다가 군인들에게 끌려 나왔다.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고 정문 봉쇄가 풀린 뒤에야 손의 땀이 말랐다.
아침이 되자 ‘준배팀’과 예정대로 1인 시위를 했다. 그날부터 그는 광장과 거리에서 살았다. 준형이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던 광장 구석에서 한 청년 간호사가 응급 상황에 처한 시민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탄핵 광장에서 ‘의료의 진짜 의미’를 자문한 그는 환자들이 몰려오는 병원을 떠나(☞9회 ‘어떤 이탈’) 병원에도 오지 못하는 환자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죽으면 똑같다지만…”
묘역 정비가 끝나고 동료들이 내려간 뒤에도 준형은 가끔 남아 마음 쓰이는 무덤들을 돌아봤다. 잊힌 사람과 발길 없는 묘지들이 곳곳에서 죽은 잔디를 입고 있었다. 관리비를 납부하지 못해 ‘체납 딱지’가 붙은 열사들의 무덤도 있었다. 기억을 비출 때도 빛은 균일하지 않았다. 준형이 빛을 가린 가지 몇개를 톱으로 잘랐다. 기억이 말라 죽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