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후보(왼쪽)가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충신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다 만난 한 시민한테 지지를 호소하며 악수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왼쪽) 주경복 서울시 교육감 후보(오른쪽)가 20일 오후 서울 쌍문동 정의여중 앞 네거리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시민들과 악수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오른쪽)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굴레다. 학부모들은 너나없이 ‘사교육비 때문에 등골이 휠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이처럼 가장 절박한 ‘민생고’가 되어 버린 사교육을 잡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새 정부 들어 사교육비는 더욱 치솟고 있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선 6명의 후보들도 저마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놓았다. 후보들은 대체로 공교육을 내실화하는 데서 사교육 문제의 해법을 찾고 있다. 그러나 사교육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차별화 전략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공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택 후보는 사교육이 선점한 ‘학력 신장’ 영역을 공교육이 되찾아오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수월성 교육 등 ‘공교육 내실화’를 통해 학부모들이 굳이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시교육감으로 재직할 때 공 후보가 추진한 초등학교 일제고사 부활, 수준별 이동수업 확대, 자사고 확대, 국제중 신설, 고교 선택제 등도 이런 교육관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공 후보의 공약에 대해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각종 통계를 보면 외국어고 등 특목고와 자사고가 초·중학교 사교육비 폭등의 주범이라는 것이 확인되는데, 공 후보의 공약이 실현되면 사교육비는 되레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표는 또 “이미 일제고사 부활로 초등학생들까지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사교육비 폭등의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주경복 후보는 과열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 후보는 이를 위해 밤 10시 이후 학원 심야교습 금지, 초·중학생 일제고사와 우열반 폐지, 학원 수강료 상한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 사교육을 조장하는 외국어고의 운영을 정상화하고, 설립 목적을 거듭 위반할 경우 강력한 제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입시 위주의 교육을 변화시키겠다는 방향은 적절하지만, 교육정책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부족하다”며 “학원 수강료 상한제와 우열반 금지 등은 현재도 이뤄지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단속할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인규 후보도 사교육 수요를 줄이려면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풍토를 과감하게 개혁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는 이를 위해 국·영·수 위주의 교육과정 개혁, 현재 지필고사 위주인 평가의 다양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 대입 준비기관이 된 특목고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일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후보의 공약 역시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진우 정책위원장은 “국·영·수 수업을 줄이고 예체능 등 다른 수업을 늘리는 것은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교육감의 권한 밖의 문제라 한계도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다른 후보들도 공교육의 기능 정상화를 사교육비 경감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김성동 후보는 저소득층 자녀 학비 지원, 공립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설의 영·유아보육기관으로 연중무휴 활용 등을 통한 교육복지 강화를, 박장옥 후보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다양화와 맞벌이 부부를 위한 저녁 탁아반 운영 등을 통한 ‘사교육비 70% 절감 방안’을 내놓았다. 이영만 후보도 방과후 특기적성교육 내실화, 영어 무상교육 등을 통한 공교육 강화로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지희 대표는 “사교육 문제는 단순히 비용을 덜어줌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사교육 경감을 위한 입시제도 개혁이라는 문제에 대해 후보들의 고민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정민영 기자 minyoung@hani.co.kr

영어 전용교사·교환학생제 등 대책
사교육비 폭등 주범 잡을까 ‘갸우뚱’

우리나라에서 사교육비 폭등의 주범은 영어교육이다.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은 한 해 수조원에 달하는 영어 사교육 열풍을 가라앉히려면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영어교육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후보들은 대체로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을 강화해 영어 사교육 수요를 줄여보겠다는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정택 후보는 영어 공교육 강화를 위해 원어민 교사를 적극 활용하고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도 전면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 후보는 서울시교육감으로 재직하던 지난 5월 “2012년까지 모든 영어교사들은 영어로 수업해야 하며 영어수업능력이 떨어지는 교사는 단계적으로 퇴출시킬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공 후보는 이 밖에도 모든 학교에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배치, 영어전용교실 설치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공 후보의 공약을 두고서는 교육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 행정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려면 일선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선행돼야 한다”며 “충분한 준비없이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의 비중만 높이게 되면 영어사교육만 더 팽창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에 반해 주경복 후보는 영어교육 강화에 앞서 영어교육의 목표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 후보는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에 대해 “영어로 하는 수업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또다른 영어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주 후보는 또 새 정부가 추진하는 영어전용교사제에 대해서도 “영어만 잘한다고 영어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반대했다. 대신, 입시 대비 영어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대입 영어 시험제도 개선을 위해 교육과학기술부, 대학교육협의회 등과 협의해 가겠다고 밝혔다.

주 후보의 공약에 대해 김혜영 중앙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교육의 목표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입장은 공감할 만하지만, 실제로 학부모들의 영어교육에 대한 수요가 상당한 것도 현실”이라며 “학부모들의 요구를 영어 교육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인규 후보는 영어시간에 영어로 수업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급하게 추진하기보다는 여건이 갖춰질 때까지 단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영어교사 연수 확대와 영어권 국가 교환학생 제도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성동 후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교육 실시를, 박장옥 후보는 교육청 소속 수련원 영어마을로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영만 후보는 영어교사에 대한 영어몰입교육 실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병민 교수는 “단순히 영어 공교육을 강화해 영어 사교육 열풍을 진정시키겠다는 생각은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며 “영어교육의 비중을 높이면 학생들의 영어학습 여건은 어느 정도 나아지겠지만, 입시를 위한 과열 경쟁과 이에 따라 앞다퉈 사교육을 받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민영 기자 minyo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