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05-10-03 09:36]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가 중요한 현안 가운데 하나이다. 15, 16대 국회에서 주요 의제로 상정되어 정당과 사회세력 사이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고, 17대 국회에서는 여당인 열린 우리당이 ‘4대 입법’ 과제 가운데 하나로 채택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이번 국회에서 결말이 날 것으로 예측되어 왔다. 9월 임시국회에서는 여야 합의처리가 힘들면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처리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 문제는 과거에 개혁세력의 ‘학원 민주화’와 수구세력의 ‘사학 소유권’ 논쟁으로 대립해 온 경향이 있고, 요즘은 사학의 ‘자율성’에 대한 논쟁으로 초점이 바뀌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학교의 자율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진솔하게 성찰할 기회가 필요해 보인다.
어떤 구성체에 대해서든 자율성이라는 것은 구성주체들이 외부의 힘에 지나친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법률적으로 사립학교에는 교육기관으로서 ‘학교’와 재정지원기관으로서 ‘법인’이라는 두 가지 주체가 있고, 학교 안에는 교원과 학생이라는 교육주체가 있고, 행정지원 주체인 직원이 있다. 따라서 자율성이 제대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학교’와 ‘법인’이 외부로부터 지나친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각 주체들이 상호 자치를 이루어야 한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는 외부의 정치적 간섭에 교육주체들이 저항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었고, 사회민주화가 어느 진행되면서 요즘은 ‘학교’ 주체들과 ‘법인’ 관계자들 사이의 권한을 놓고 대립각이 세워진다. ‘법인’의 ‘학교’에 대한 부당한 지배에 학교 주체들이 반발해 왔고, ‘사립학교법’ 개정은 바로 그런 문제의 해결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먼저 ‘학교’의 구성 주체인 교원, 학생, 직원의 자율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교수(협의)회, 학생회, 직원회를 법률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학교’와 ‘법인’의 상호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견제와 협력을 이루기 위해 법인이 학교의 운영위원회(또는 평의원회)에 참여하는 동시에 학교 주체들이 법인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일정하게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대립하고 있는 지점은 법인 관계자들이 법인이사회에 대한 학교 주체들의 참여는 반대하면서 학교 운영에 대한 특권적 지위는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사립학교는 말 그대로 ‘사립’이기 때문에 설립자의 사유재산에서 유래하는 소유권을 인정해야 하고 그래서 법인 운영은 물론 학교 운영에서도 특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성이란 곧 소유주체의 자율성이라는 입장이다. 사실 사립학교의 경우 국가와 사회가 감당하지 못해 사적 재산이 투입되어 ‘법인’이라는 주체가 발생한 현실은 어떤 식으로든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학교법인이 적절하게 (학교 주체들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학교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교육이 잘 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교육 자체를 담당하고 있는 교육주체의 문제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교육주체들이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성과를 극대화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그에 따르는 책무를 다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교수와 학생의 자치를 보장하기 위해 교수(협의)회와 학생회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하고 교육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직원들의 자치기구인 직원회를 법제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그런 점에서 요즘 정부정책이나 입법 활동 그리고 언론보도에서 대학의 교육주체들에게 책임만 강조하고 의사결정 참여의 권리를 소홀히 함으로써 자발적 노력과 사기를 떨어트리는 흐름은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할 일이다. 또한, 학생이나 직원의 학교운영 참여에 부정적 인식을 가져 온 일부 교수들의 시각도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법인 관계자들이 학교주체들의 이사회 참여를 무조건 거부하거나 학교 인사와 재정에 관한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억지도 버려야 한다. 정치권은 모든 이해관계와 선입관에서 벗어나 올바른 자율성을 반영하는 법률개정에 성의를 다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