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길
     

 

 

 

 


그는 치악산 자락의 북원 뜰 (원주)에서 태어났다. 성산 마을에서 뛰놀고, 안흥 장터에서 찐빵을 별미로 사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강원도를 한 번도 벗어나 보지 못했다. 그 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조금 하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에서 8년 가까이 보낸 시간, 대학 3학년 과정부터 다시 시작한 공부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며 프랑스 친구들과 어울려 땀 흘렸던 추억들,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겪었던 애환들, 방학 때 유럽 이곳저곳을 찾아 다니며 여행하던 기억들, 그리고 두 아들을 낳아서 키우며 겪었던 많은 경험들은 즐거웠던 것도 힘들었던 것도 모두 이제는 소중한 인생의 한 부분으로 남게 되었다.


서울에 돌아 온 그는 많은 감회에 사로잡혔다. 거리와 캠퍼스마다 최루가스가 자욱했다. 아직도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는 허공에 맴돌고, 독재와 비민주와 불합리가 판을 치는 현실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려운 시기에 고국을 떠나 있다가 돌아온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꼈다. 그래서 주어진 순간부터라도 사회적인 빚을 갚으며 생활하려고 애썼다.


그는 건국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및 불어불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앙대, 성신여대, 한국외대, 홍익대, 서울대,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의 강의를 맡아 왔다. 커뮤니케이션, 문화이론, 사회비평, 수사학, 기호학, 언어과학, 프랑스어, 인문사회 사상 등에 관해 연구하면서 강의를 해왔다.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그는 많은 현실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바람직한 학문과 교육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1997년에서 998년에 걸쳐 교환교수로서 미국의 Georgetown 대학과 Maryland 대학에 체류했던 기회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세계화', '정보화', '신자유주의' 등의 본산지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대학에서 보고 겪은 체험은 오늘날 문명과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시아의 한국, 유럽의 프랑스, 아메리카의 미국을 비교하며 자아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요즘 그는 잠실의 집, 캠퍼스의 연구실, 세상 여기 저기를 옮겨 다니며
"어떻게 하면 좋은 강의를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제대로 연구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이 나라의 교육이 바로 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등등의 번민에 사로 잡혀 거친 꿈을 꾸면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