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란 어떤 것에 대한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어떤 것에 대한 내용이 있고, 그에 대한 표현이 있으면, 기호인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과일 가운데 일정한 모양과 맛을 지닌 어떤 것을 ‘사과'라고 표현한다. 이 때 사과라는 낱말은 하나의 기호가 된다. 왜냐하면, 과일 가운데 한 종류인 어떤 것에 대하여 우리는 그 내용을 알고서 그에 관해 말하고 싶을 때 ‘사과'라는 표현을 붙여서 부르기 때문이다. 영어권 사람들은 그에 대해 ‘apple'이라는 표현을 붙여 부르고,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은 ‘pomme'이라는 표현을 붙여 부른다. 이때 ‘사과', ‘apple', ‘pomme'은 모두 (거의) 같은 내용에 대해 다른 표현을 가진 기호들이다.
기호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것'과 ‘내용'과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기호는 ‘어떤 것'의 ‘내용'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렇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대로 ‘사과'라는 낱말 기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 때 ‘어떤 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우리가 일상적으로 과일 가게에서 볼 수 있는 실제의 과일로서 사과들일 것이다. 다시 말해 사물로서의 특정한 과일이 그 어떤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과라는 물건을 직접 눈으로 보거나 만지지 않고도 머리 속에 그 사과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사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이다. 사전에 기록된 설명처럼 우리는 머리 속에 사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과의 실제 사물이 없는 곳에서도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이해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과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도 사과에 대한 내용을 이해할 수가 있다. ‘용'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이 용에 대해 일정한 내용을 이해하면서 그 말을 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치이다. 그렇게 실제의 사물이 있든 없든 그 내용을 생각하며 표현을 붙여 쓸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대상이 있고, 그것의 내용이 있고, 그에 대한 표현이 있다. 여기서 대상은 ‘사과'처럼 실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용'처럼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 대상은 ‘사과'처럼 구체적일 수도 있고, ‘사랑'처럼 추상적일 수도 있다. 그렇게 대상은 종류나 속성에서 매우 다양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내용은 언제나 일정한 관념으로 인간의 의식세계에 존재한다. 사전 속에 정의되어 있듯이 말이다. 따라서 기호는 일단 대상의 유무나 종류에 상관없이 내용과 표현이 있으면 성립한다. 이 때에 내용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기호란 어떤 표현 속에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고, 바꾸어 말하면 어떤 의미가 표현되는 것이다. 결국 단순하게 말하자면 기호란 어떤 내용이 있고 그에 대한 표현이 있을 때, 또는 어떤 표현 속에 의미가 들어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어떤 의미가 일정한 표현으로 나타나거나 어떤 표현 속에서 일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매우 많다. 그런 모든 것들이 다 기호에 속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화가의 그림을 하나 눈앞에 놓고 있다고 하자. 그 그림의 표현 속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순간 그것은 하나의 기호가 된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으려고 애쓴다. 그렇게 하여 미술은 자연스럽게 기호의 한 범주가 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음악을 그냥 소리로서만 듣기보다 소리의 표현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고자 애쓴다. 따라서 음악도 자연스럽게 기호의 한 범주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우리 삶의 대부분 현상들이 기호가 되어 버린다.

 
 
기호의 내용은 대개 사람의 의식 속에 추상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표현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원칙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인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표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떤 표현에 대해서든 감각작용을 통해서만 그것을 인지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 이다. 사람의 감각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작용한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기호의 표현도 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대응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기호의 종류를 감각 방법에 따라 다음의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시각기호 : 글, 수화, 미술, 교통신호, 간판, 등대, 봉화, ...
2. 청각기호 : 말, 음악, 호각소리, 종소리, 경적, 전화신호음, ...
3. 촉각기호 : 점자, 악수, 포옹, 애무, ...
4. 후각기호 : 향수, 여러 가지 냄새 체계 ...
5. 미각기호 : 맛의 체계, ...

모든 기호가 위의 다섯 가지 범주 가운데 한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동시에 여러 가지 감각작용을 통해 내용을 표현해 내는 기호들도 많다. 예를 들어, 영화는 시각과 청각 등을 동시에 활용해서 의미를 표현해 내는 종합적인 기호작용을 한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문화 속에서는 점차로 그렇게 복합적인 기호 영역의 장르가 늘어가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