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복 교수 개인홈페이지::::
 
     
 




  마오리족 여왕 장례식
2006년 8월 21일 뉴질랜드 마오리족 전사들이 와카(카누)에 8월 15일 숨진 마오리족 여왕 테 아리키누이 데임 테 아타이랑기카아후의 관을 싣고 해밀턴에 있는 와이카토 강을 따라 노를 젓고 있다. 이날 강가를 따라 수천명의 마오리족이 나와 고동나팔을 불고, 마오리족 전쟁 춤인 하카를 추는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여왕에게 작별을 고했...
  ‘소버린’ 형제, 뉴질랜드 최고부자 등극
'소버린 자산운용'의 오너로 알려진 리처드와 크리스토퍼 챈들러 형제가 재산 총액 40억 뉴질랜드 달러 규모로 2005년 뉴질랜드 최고 부자 자리에 올랐다. 이들의 재산은 지금까지 뉴질랜드에서 최고 부자 자리를 고수해온 그레이엄 하트(20억 달러)나 토드 가족(23억 달러)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거의 배나 되는 막대한 것이다. 더 놀라운 ...
  뉴질랜드와 한국의 관계
뉴질랜드의 대한관계뉴질랜드는 1949년 7월 한국을 정식 승인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 때에는 육군과 해군 5,350명이 영국 연방군의 일원으로 참전, 1951년 중공군의 제1차 춘계공세를 저지한 '가평전투'에 참가하였으며, 1967년 9월 이를 기념하여 가평에 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뉴질랜드 4국 참전기념비가 세워졌다. 그들은...
  뉴질랜드의 통신
뉴질랜드의 통신과 과학기술뉴질랜드는 1863년 전기통신과를 설치하였고, 1930년 국제전화서비스를 시작하였다. 1948년 영연방 전신협정에 따라 국제전기통신을 국영화하였고, 1989년 4월 통신시장이 자유화되어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완전히 철폐되었다. 1998년 현재 통신시장의 최대 강자는 텔레콤 뉴질랜드로서 시내, 장거리, 국제...
  뉴질랜드의 문화
뉴질랜드의 문화뉴질랜드는 건전한 중산계층의 나라로, 일상생활은 검소한 편이다. 주류(酒類) 소비에는 엄격한 규제가 있으며, 음주를 수반한 오락시설은 없다. 반면에 크리켓·럭비·스키·골프 등의 옥외 스포츠는 매우 활발하며, 특히 럭비는 뉴질랜드의 '국기(國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 등 유럽 이민자들이 국민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어 서구...
  뉴질랜드의 사회
뉴질랜드의 사회뉴질랜드는 적은 인구로 넓은 국토를 유효하게 이용하여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으며, 그 결과 국민생활이 매우 풍요하다. 또한 인구가 적기 때문에 산업이 기계화되고 생산성이 향상되어 완전 고용이 실현되었다. 이러한 현상과 1898년 세계 최초로 양로연금제가 실시된 이후 완벽한 사회보장제도 덕분에 이 나라는 세계적인 복지국가가 ...
  뉴질랜드의 교통과 관광
뉴질랜드의 교통관광뉴질랜드는 남반구의 섬나라로 항공·해상 교통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며, 오클랜드·웰링턴·크라이스트처치·더니든·파머스톤 노스 등 대도시에는 각각 완비된 국제공항이나 무역항이 있다. 국내 교통은 항공로·철도·도로가 모두 정비되어 있으나 철도는 화물수송이 주가 되어, 여객은 항공기를 많이 이용하며 인구 2만 이상의 도시는 거의...
  뉴질랜드의 경제
뉴질랜드의 경제뉴질랜드는 고도로 발달한 농목국(農牧國)이며, 특히 양모·낙농품·육류의 생산과 수출이 국민경제의 골격을 이룬다. 양·육우(肉牛)·젖소 등을 주로 사육하고 있으며, 양모·버터·육류 생산량은 세계적 수준이다. 양의 대목장은 남알프스산맥 동사면 일대의 과우지역(寡雨地域)에 많으며, 양·밀의 혼합농업은 캔터베리평원, 낙농은 북섬의...
  뉴질랜드의 정치
뉴질랜드의 정치뉴질랜드와 영국 본국과의 관계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보다 훨씬 깊다. 정치체제는 입헌군주국으로 임기 5년의 총독은 국가원수인 영국 국왕의 대행자이며, 의회와 입법권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는 명목뿐으로 실질적인 권한은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쥐고 있다. 의회는 1951년까지는 양원제였으나 그후부터 단원제가 되었으며, 영국식 소선거...
  뉴질랜드의 역사
뉴질랜드의 역사뉴질랜드를 처음으로 찾은 유럽인은 1642년 남섬 서해안에 도착한 네덜란드의 A.타스만이었다. 그는 이곳을 고향 젤란트의 이름을 따서 노바젤란디아라고 명명하였으며, 뉴질랜드는 바로 이 말의 영역(英譯)이다. 그러나 타스만은 상륙하지 않고 떠났으며, 그후 1769∼1777년 J.쿡이 여러 차례 두 섬을 답사하였다. 이어 1814년 런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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